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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사 전문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15&aid=0004175576&sid1=001&lfrom=facebook&fbclid=IwAR017WDJrQcTouKYTgzkacDIdipuouU3yd_nreZon_GRbxMk5_MLh0FDSHI
[ 고재연 기자 ]‘어떻게 하면 일본 파나소닉을 넘어 세계 1등이 될 수 있을까.’ 삼성전자의 컴프레서(압축기) 기술자였던 손욱 전 삼성종합기술원장(74)은 1979년 기획실로 부서를 옮기자마자 이런 고민을 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회장에 대한 책, 전자산업의 미래를 담은 책 200권을 사 모았다. 6개월간의 토론 끝에 1980년 경영, 구매, 생산, 조직, 인사 전략을 집대성한 ‘삼성전자 10년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토대로 전 사업부 임원을 모아놓고 12시간 동안 강연을 했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직급이 부장이었을 때 일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파나소닉은 물론 전 일본 전자업체를 뛰어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 얘기부터 꺼냈다. 전자산업에서 일본을 빠르게 추월한 한국이 기초 소재산업 육성에는 뒤처진 원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손 전 원장은 “국가 전체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과학기술정책이 장기적인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정치 논리에만 휘둘리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삼성의 전자 사업은 일본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했습니까.
“1983년 이병철 회장은 ‘도쿄선언’을 통해 반도체산업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일본 경제계는 한국에 기술 전수를 거부했죠. 그때 ‘일본 반도체의 어머니’로 불린 샤프의 사사키 부사장이 기술을 전수해줬습니다.”
▷삼성이 어떻게 빠른 속도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요.
“1990년대 ‘메모리 강자’였던 일본 NEC의 한 간부가 제게 묻더군요. ‘한국 기술자들은 굉장히 기초적인 것을 물어본다. 그런데 어떻게 D램 개발에선 삼성이 우리를 제치고 ‘세계 최초’의 신화를 쓰게 된 것인가?’ 기본적인 이유는 한국인의 집념과 승부욕에 있었겠죠.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홀로 ‘장인정신’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근성은 뾰족한 ‘후지산’과 같고, 협업에 능한 한국인의 근성은 백록담을 기점으로 넓게 퍼진 ‘한라산’과 같다고요.”
▷일본의 ‘장인정신’이 소재·부품 강국을 만들었습니다.
“조립산업은 한국에 어느 정도 영역을 내줬지만, 일본은 소재·부품 산업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고부가가치화를 이뤄냈습니다. 그렇게 글로벌 분업화가 이뤄진 것이죠. 일본 도레이는 1970년대부터 탄소섬유를 연구했습니다. 30년 이상 적자가 났지만 다른 사업부가 번 돈으로 메워가며 사업을 지속했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사업에서 ‘원천 특허’를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성장했습니다.”
▷정치권에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비판도 나옵니다.
“기본적인 소재까지 전부 다 국산화하라는 것은 글로벌 분업 시대에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자국 제품이라는 이유로 품질이 떨어지는 소재와 부품을 받아 쓰면 그대로 2류, 3류가 되죠. 글로벌 경쟁 시대에 일류 회사는 국내 시장을 쳐다보면 안 됩니다.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기업에 집안일까지 챙기라고 하면 기업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는 길입니다. 한국에서 왜 기초 소재가 발전하지 못했냐고요? 그런 비판은 기업이 아니라 정부를 향해야 합니다.”
▷정치권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겠습니다.
“2012년 경북 구미의 화공업체에서 불산(불화수소)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한 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의 규제가 생겼죠. 국내 기업들은 고순도 불화수소를 국산화하는 대신 수입해서 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당시 논의는 과학자 등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환경단체 등 비(非)전문가에 의해 이뤄졌죠. 탈(脫)원전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 정책이 장기적인 비전이 아니라 정치적 논리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게 문제입니다.”
▷정부 차원의 장기적 과학기술 육성 비전이 있다고 봅니까.
“교육과 과학기술은 백년대계라고 합니다. 하지만 과학기술 육성 장기 비전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문화됐습니다. ‘6T(technology)’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의 용어가 나왔지만 다 사라졌죠.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비전은 선뜻 떠오르는 것도 없습니다.”
▷기업들은 어떻습니까.
“삼성에 있을 때 고객사들은 꼭 ‘기술 로드맵’을 요구했습니다. 지금 제조하고 있는 제품의 수준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물었죠. 장기적 로드맵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거래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죠. 삼성종합기술원에 있을 땐 ‘무한탐구실’이라는 방을 만들고 10년, 20년 후의 목표와 비전, 기술 로드맵을 공유했습니다. 국가의 연구개발(R&D)정책도 정권마다 바뀌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로드맵 아래에서 진행돼야 합니다.”
▷한국 정부도 약 20조원의 R&D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계의 비전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모이 주듯’ 나눠주고 끝내니 발전이 없는 겁니다. 한곳에 몰아놓고 육성해야 할 특화산업도 지역균형이라는 정치 논리에 빠져 제 구실을 못하고 있죠. 바이오연구소가 군 단위, 시 단위로 여기저기 하나씩 있더군요. 갈 곳 없는 연구자들만 거기로 갑니다.”
▷해외에서는 어떻습니까.
“일본은 1990년대 ‘국가 R&D 대혁신’ 작업을 했습니다. 각 대학에 전문연구소를 설립해 학생과 기업이 자유롭게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프리존’을 조성했죠. 세계 과학자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인프라를 깔아 놓으면 세계 어느 나라와 붙어도 지지 않을 만한 인재풀,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가 형성됩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미국 듀폰, 일본 교세라를 거쳐 삼성전기와 함께 일하던 일본인 기술자가 각 나라의 소재 기술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 듀폰이 1만 번 실험을 한다면 교세라는 100번, 삼성은 10번 정도를 한다.’ 소재 기술의 차이는 연구인력 수, 투입된 자금, 설비 수준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한국처럼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수밖에 없죠.”
▷따라갈 만한 모델이 있습니까.
“1990년대 IBM 출신인 이조원 한양대 나노융합과 석좌교수는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선 나노 기술이 필수적’이라며 삼성 경영진을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예산이 많이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회사 반응은 시큰둥했죠. 마침 1999년 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노기술 관련 연구개발사업 공고를 냈습니다. 10년간 1400억원이 투입되는 거대 프로젝트였죠.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을 꾸려 이 교수가 단장을, 제가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10년간의 연구 끝에 40㎚(나노미터, 1㎚=10억분의 1m ) 낸드플래시의 핵심 기술인 전하트랩플래시(CTF)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세계적 ‘사건’이었죠.”
▷국가와 연구소, 기업이 협력해 성공한 사례군요.
“당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추정한 사업단의 경제적 가치는 17조원이었습니다. 삼성종합기술원 인력을 포함해 4000여 명이 달라붙었죠. 10년간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과 특허 출원 건수는 각각 1000건이 넘습니다. 당시 국가과제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이런 성과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정권과 상관없이 10년 이상 투자할 만한 분야를 찾고, 여기에 장기적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